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이거 우즈/선수 경력 (문단 편집) ==== 2005년 ~ 2009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30410112303-2005-tiger-woods-cover-single-image-cut.jpg|width=100%]]}}} || || {{{#ffffff '''2005년 Masters Tournament 우승 후, 포효하는 타이거'''}}} || 철저한 플랜으로 2005 시즌을 준비한 타이거는 1월에 참가한 첫 대회인 ‘뷰익 인비테이셔널’에서 16언더파의 성적으로 2위 그룹을 3타차로 따돌리며 우승을 달성했다. 해당 대회 3번째 우승이자 매치 플레이를 제외한 일반 스트로크 대회로는 15개월 만의 우승. 기세를 탄 타이거는 3월에 열린 ‘Ford Championship at Doral’에서 [[필 미켈슨]]과의 혈전 끝에 1타차로 제치며 시즌 2번째 승리를 가져 왔다. 특히 1타차 접전이던 18번 홀에서 ‘숏 게임’의 황제 필의 버디 트라이 칩샷이 홀을 핥고 나오면서 연장전이 무산된 씬은 백미. 그리고 실로 3년 만의 메이저 타이틀 도전이 될,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이자 타이거에게는 각별한 Masters Tournament가 열린다. 2002년 U.S. Open 이후 10개의 메이저 대회 동안 타이거는 추가 승수를 올리지 못했다. 2위는 한번 뿐, TOP 10에 들지 못한 것도 7번일 정도였다. 빠른 기세로 잭 니클라우스의 기록에 근접해 가다가 정체에 이르니 여기 저기서 말도 많았다. 그 상황에서 스윙코치를 교체하고, 전면적으로 스윙을 바꾸고, 결혼도 했으니 호사가들 사이에서 논란은 그칠 세가 없었다. 일반 대회에서 우승하는 타이거는 더 이상 감흥을 주지 못했다. 메이저에서의 한 방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더욱이 Masters Tournament는 오늘 날(당시 기준) 타이거를 있게 해준 대회였던 만큼 ‘제 2기 타이거 우즈’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첫 날은 2오버파를 쳤다. 5언더파를 치며 단독 선두에 나선 크리스 디마르코(미국)[* 1968 ~ 현재. PGA 투어 3승을 거두고 있는 베테랑 골퍼. 메이저에서도 강한 편이라 우승에 많이 근접했으나 결론적으로는 단 1승도 못했다. U.S. Open에서만 최고 순위가 9위였고, 나머지 메이저에서는 모두 2위까지 해봤다. 이 중 2번은 타이거 때문에 2위. (시대를 잘못 만난) 아쉬움이 클 만 하다.]와는 7타차였다. 2라운드에서 심기 일전하여 6언더파를 몰아치며 4언더파로 상위권에 올라왔으나 디마르코가 이 날도 5언더파를 적립, 총 10언더파로 단독 1위를 질주하며 타이거와의 격차를 6타차로 유지하였다. 그래도 타이거는 타이거. 3라운드에서 불꽃과 같이 7언더파를 몰아치며 그 날 2오버파를 기록한 디마르코를 오히려 3타차로 제치고 단독 1위에 나선 것. 3년 만의 메이저 우승에 성큼 다가선 타이거의 경기력에 다시금 세계 골프팬들의 관심이 집중 되었다. 최종 라운드에서 맞붙은 타이거와 디마르코는 한치 양보 없는 경기를 선보였다. 3타 차의 여유가 있었으나 디마르코가 힘을 내며 경기 내내 타이거를 압박하였고, 경기 전체의 향방을 가른 파3 16번홀에 도착했을 때 타이거와 디마르코는 13언더 vs 12언더로 1타차였다. 누군가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타이거가 친 티샷은 그린과 그린 좌측의 해저드를 넘어 러프 쪽으로 빠졌다. 반면에 디마르코의 샷은 온그린. 우측에서 좌측으로 심하게 경사진 홀이었기 때문에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한 홀이고(심지어 경사의 끝엔 벙커가 있고, 그 벙커를 넘어서면 해저드가 있다) 타이거 입장에서는 칩샷으로 최대한 홀에 붙여 파 세이브로 한 숨 돌리는 전략이 가장 주요한 상황이었다. 2분간 면밀히 그린과 홀 주변을 캐디와 구석구석 살펴 본 타이거는, 캐디 스티브에게 “요 앞에 보이는 동전 모양 자국으로 볼을 떨어뜨리면 공이 홀 쪽으로 타고 갈 수 있을까?”라고 물어 봤고, 스티브는 “아마도 그럴 것 같다”라고 답을 했다.[* 훗날 타이거의 칩샷이 정확히 동전 모양을 때리고 굴러 가는 순간부터 본인은 닭살이 돋았다고 이야기 한 바 있다.] 목표물을 정확히 강타하고 두번 더 그린에서 튄 공은 회전이 멈춘 뒤 홀 방향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정확한 흐름에 방송 캐스터도 “Oh My Godness”라고 하며 기대를 하였고, 공은 또르르 굴러가 홀 앞에 정확히 선다. 그 시점에서 볼에 새겨진 [[나이키]]의 로고가 살짝 보인 뒤 그대로 홀로 쏙 들어간다. 그야말로 완벽한 샷. 몰아 치는 환호성 속에 디마르코는 애써 침착 표정을 유지 했어야 할 정도였고, 결국 버디 트라이가 실패하며 2타차로 벌어지고 말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historylocker.com/Tiger-Woods-2005-Masters-Pete-Pappas-TheGreekGrind-PGAPappas.jpg|width=100%]]}}} || || {{{#ffffff '''”넣었어, 넣었다구!” 하이파이브 하는 타이거와 스티브'''}}}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7Fg4sZLrjwA, width=560, height=320)]}}} || || {{{#ffffff '''The Master 역사에 길이 남을 ‘The Shot''''}}}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70UmRCD9dmM, width=560, height=320)]}}} || || {{{#ffffff '''‘The Shot'의 실제 방영분'''}}} || 너무도 대단한 샷을 해서 흥분한 걸까. 타이거는 그 답지 않게 샷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17, 18번홀에서 연거푸 보기를 한다. 덕분에 파로 끈덕지게 버틴 디마르코는 연장전에서 다시금 전의를 다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연장전으로 들어가면서 정신을 재무장한 타이거는 첫 번째 플레이오프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며 3년 만의 메이저대회 우승을 쟁취해낸다. 타이거의 우승으로 PGA 투어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특히 16번 홀의 기적 같은 샷은 한 동안 여기저기서 노출이 되며 명성을 떨쳤다. 타이거가 칩샷한 공이 오거스타의 16번 홀을 가로지르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7초. 홀에 들어가기 전까지 볼을 비추던 방송사 카메라에는 나이키의 로고가 또렷이 찍힌 채 계속 방영이 되었다. 심지어 들어가냐 마냐의 상황이 되었을 땐 클로즈업까지 되었다. 그야 말로 100만번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순간. 이 샷의 장면은 당일 방송 분 외에 엄청나게 노출이 되었고, 지금도 이렇게 유투브 등을 통해 볼 수 있으니 브랜드 광고 효과에 대해선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당시 기준으로 샷이 성공된 당일에만 100만 달러의 광고 가치를 창출했다 하니 말 다한 셈이다. 이 우승으로 통산 9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 타이거는 남아공의 레전드 선수인 게리 플레이어[* 1935 ~ 현재. 잭, 아놀드와 함께 따로 항목을 만들어야 할 레전드 골퍼 중 한 명이었다. 남아공 출신으로 PGA 투어 24승을 포함, 시니어 프로가 된 지금까지 통산 승리를 합치면 165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찍은 선수다. 그랜드 슬래머 중 한 명으로 Masters Tournament와 The Open Championship을 각각 3회 우승, U.S. Open 1회, PGA Championship은 2회 우승을 달성했다. 70세 이후에도 누드 사진을 스포츠 잡지 표지에 올리는 등 건강하고 정력적인 모습으로 모두의 존경을 사고 있는 리빙 레전드.] 그리고 20세기 가장 위대했던 선수 중 하나인 벤 호건[* 1912 ~ 1997. PGA 45승 포함 통산 64승을 거둔 선수로, 그랜드 슬래머 중 한 명이다. 현대 골프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골프 스윙의 이론을 정립시킨 인물로 평가 된다. 1957년에 발간한 ‘Five Lessons’는 한 동안 골프 레슨프로와 꿈나무들의 필독서였다.]과 메이저 타이틀 집계에서 동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2달 뒤 있은 U.S. Open에서 타이거는 2개 대회 연속 메이저 우승과 동시에 두 자릿수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뜻밖의 복병인 뉴질랜드의 마이클 캠벨[* 1969 ~ 현재. PGA Tour 통산 1승 기록. 이 1승이 메이저 타이틀이다.]에게 2타차 우승을 내주며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연속 메이저 우승은 놓쳤지만, 시즌 두 번의 메이저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거둔 타이거는 새로 바뀐 스윙에 완전히 적응을 하였고, 좋은 경기력에 고무 되어 있었다. 그리고 5년 전 우승했던 골프의 성지, 세인트 앤드루스로 날아가 참가한 The Open Championship에서 통산 10번째 메이저 우승을 달성해 낸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satftw.files.wordpress.com/ap_on_the_fringe_golf_65854528.jpg|width=100%]]}}} || || {{{#ffffff '''통산 10번째 메이저 우승이라는 금자탑'''}}} || 이 대회는 열리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레전트 ‘잭 니클라우스’가 The Open Championship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총 3번의 본 대회 우승을 기록하며 PGA 통산 73승을 비롯, 메이저 18승과 총 117승에 빛나는 리빙 레전드와의 이별에 영국이 들썩였고 많은 기자진들이 잭의 마지막을 촬영하기 위해 세인트 앤드루스에 모였다. 잭 니클라우스가 마지막 홀에서 5m 남짓한 버디를 성공시키며 화려하게 The Open Championship 무대를 마무리 하였지만 진짜 주인공은 역시 타이거였다. 첫 날부터 6언더를 치며 1위에 오른 타이거는,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은 채 선두를 질주하며 총 14언더파로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를 5타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결국 골프 인생을 걸고 도전한 스윙 교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무릎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2000년대 초반의 안정감을 보여 준 타이거는 남은 2005 시즌에서 추가 2승을 거두며 ‘평범했던’ 2004년으로부터 화려하게 복귀했다. [[필 미켈슨]]이 우승한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PGA Championship에서도 공동 4위를 기록하며 ‘타이거 슬램’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2000년을 제외하면 메이저 대회에서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시즌이 되었다. 2005년의 타이거는 PGA 올해의 선수상은 물론, 상금왕과 다승왕, 최저 타수상까지 휩쓰는 성적을 남기며 No.1 Ranking Golfer의 위용을 과시했다. 스윙 교체로 바로 효과를 보기도 어려운데, 효과 정도가 아니라 다시 투어를 초토화 하는 수준이었으니 경악할 만 했다. 더 놀라운 것은, 2006 시즌에 보여 줄 퍼포먼스에 비교하면 이 해의 성적은 오히려 별 것 아닌 수준이라는 것. 1월의 ‘뷰익 인비테이셔널’[* 현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대회 통산 네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상큼하게(!) 출발한 타이거는, 2월에는 초청 받아 참가한 유러피언 투어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과 3월에 열린 ‘Ford Championship at Doral’에서 우승을 달성[* 대회 2연패]한다. 4월의 첫 메이저 대회인 Masters Tournament에서는 나흘 내내 70타대의 꾸준한 경기력으로 총 3언더를 기록했으나 3~4라운드에서 집중력을 보인 [[필 미켈슨]]의 안정된 경기력 앞에 우승을 내줘야 했다. 전반적으로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던 타이거에게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져 온다. 최고의 친구이자 정신적인 지주였던 아버지 ‘얼 우즈’가 전립선암으로 5월 3일, 74세의 일기로 사망한 것.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espn.com/r75859_1296x1121cc.jpg|width=100%]]}}} || || '''{{{#bfc1c2 아버지 장례식장. 굳은 표정의 타이거 우즈.}}}''' ||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라는 스포츠를 접한 순간부터 타이거와 얼은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았다. 타이거를 절대적인 위치로 이끈 강한 정신력과 승부사로써의 기질, 늘 도전에 임하는 굳은 의지는 다름 아닌 얼 우즈로부터 영향을 받았기에 가능했던 일. 타이거의 골프 인생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던 ‘영원한 벗’ 아버지의 죽음에 우즈는 정신적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다시 필드에 복귀하여 호령하는 것만이 천국에 있을 아버지의 응원에 답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이 무너진 타이거의 경기력은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그 해 6월에 있었던 U.S. Open에서 이틀 연속 6오버파를 치며, 도합 12오버파라는 성적으로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메이저 38번째 대회 만에 컷 탈락의 쓴 맛을 본다.[* 12오버파라 충격적인 숫자로 생각하겠지만, 당시 대회가 열린 윙드풋은 역대 U.S. Open 최고 난이도 대회장 2위를 기록할 정도의 난코스이다. 우승자인 호주의 제프 오길비가 총 5오버파로 우승했을 정도.] 이 대회를 통해 절치부심한 타이거는 다시 한번 메이저에 도전한다. 영국의 호일레이크 코스에서 개최된 제 135회 The Open Championship에 참가한 타이거는 연습 라운드를 돌면서 그라운드 상태에 걸맞은 플랜을 짜고 시합에 임한다. 딱딱히 말라 굳어 버린 호일레이크 코스에서는 아무리 눌러 때려도 볼이 계속 굴러 갔다. 거리 보다 볼의 컨트롤이 더 중요했던 것. 이 곳에서는 쓸데없이 멀리 쳐 봤자 계산 안되는 골프가 될 것이라 판단한 타이거는 나흘 동안 가장 계산이 안 서는 장비인 드라이버를 딱 한번 밖에 사용하지 않았고, 모든 클럽을 평소 보다 한 클럽 아래로 잡고 경기를 치뤘다. 즉, 평소에는 5번 아이언을 들었을 거리에서 6번 아이언을 사용한 것. 그렇게 해서도 충분한 런으로 5번 아이언 만큼 거리가 나기 때문이었다. 볼을 컨트롤 하는 것으로 경기 플랜을 잡은 타이거의 선택은 탁월했다. 첫 날 5언더로 공동 2위의 좋은 출발을 보인 타이거는 둘째 날 단숨에 7타를 줄이며 선두로 뛰어 올랐다. 특히 14번 홀에서 2번 아이언으로 티샷한 뒤 200야드 정도 남은 세컨샷이 이글을 기록했던 것은 대회 중 타이거가 자신감을 갖게 된 터닝 포인트이자 우승을 위한 결정적인 샷이었다. 타이거 최고의 샷 중 하나로 평가되는 이글샷이 나온 뒤 순풍에 돛을 단 듯 타이거는 선두를 질주했고, 3~4라운드에서도 타수를 줄이며 도합 18언더파의 성적으로 우승을 달성한다. 전년도에 이은 대회 2연패이자, 월터 헤이건[* 1892 ~ 1969. 미국 출생. PGA 45승 포함 통산 75승을 거둔 선수로, 메이저에서는 Masters Tournament를 제외한 나머지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달성한 바 있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통산 11회째 메이저 타이틀 획득. 무엇보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은, 우승을 결정지은 뒤 캐디 스티브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던 타이거의 모습. 코스 밖에서는 밝은 미소를 보여 주지만 코스 안에서는 냉혹한 승부사로, 장갑을 벗은 뒤에야 본심을 드러 내었던 타이거가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dailymail.co.uk/1405206559970_wps_3_Golfer_Tiger_Woods_is_pic.jpg|width=100%]]}}} || || {{{#ffffff '''아내의 얼굴을 보자 다시 눈물이 터져 나온 타이거 우즈'''}}} || “아버지의 혼이 느껴진다”라며 대회 전 결의를 다졌던 타이거는 아버지에게 맹세한 자신 만의 약속을 우승으로써 지켜 내었고 인터뷰에서도 “아버지의 영전에 바친 이 우승은 너무도 뜻 깊다. 마지막 퍼트가 들어간 뒤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스티브(캐디)가 ‘이 우승은 너의 아버지 것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라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The Open Championship 에서의 우승 이후 타이거는 그야말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2주 후에 참가한 ‘뷰익 오픈’에서 통산 2번째 우승을 달성한 타이거는, 다시 한 주를 건너 뛴 뒤 시즌 마지막 메이저인 PGA Championship에 참가한다. 일리노이의 메디나에서 열린 본 대회에서 타이거는 첫 날 3언더의 성적으로 공동 10위, 나쁘지 않은 스타트를 끊는다. 이튿날 4언더를 기록하며 순위를 공동 5위까지 끌어 올린 타이거는, 무빙데이인 3일째 7언더를 몰아치며 14언더파를 기록하였고 영국 출신의 스타 골퍼 ‘루크 도널드’[* 1977 ~ 현재. 전성기인 2011 ~ 2012년에 40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칼날 같은 아이언과 정교한 숏 게임을 자랑하는 선수. 2011년에는 사상 최초로 PGA 투어와 유러피언 투어의 상금왕에 등극하였고, 이런 활약으로 PG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깔끔한 용모와 스윙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골퍼이지만 메이저 우승 기록이 없는 것은 아쉬움. 4개 대회 모두 TOP10은 기록했으나 우승과의 연은 아직 맺지 못한 상태이다.]와 공동 1위인 상태에서 파이널 라운드를 맞이하게 된다. 팽팽한 경기가 예상되었으나 2타를 잃은 루크 도널드를 상대로 4타를 줄인 타이거가 완승, 18언더파의 성적으로 통산 12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한다. 올 타임 메이저 우승 회수 단독 2위 등극.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14043-presscdn-0-31.pagely.netdna-cdn.com/2006TigerJohnBiever_600x400_0.jpg|width=100%]]}}} || || {{{#ffffff '''5타차의 완승. 2006 The PGA Championship'''}}} || 기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다음 주에 열린 WGC 대회 중 하나인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 통산 5번째 우승을 획득해 낸 것. PGA 투어 내에서의 높은 포인트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타이거는, 플레이오프 첫 대회인 ‘도이치뱅크 챔피언십’에서 비제이 싱을 2타차로 제치고 우승하며 출전한 4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하는 기록을 세운다. 약 한달 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챔피언십’에서도 대회 통산 5번째 우승을 거머쥐며 시즌 8승째를 거머쥔 타이거는 최종적으로 Tour Championship 우승은 놓치지만 해당 시즌 통틀어 최고의 선수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2000년 이후 통산 4번째 AP 통신 선정, 올해의 남자 스포츠 선수가 되었으며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까지 싹쓸이 했다. 1월의 ‘뷰익 인비테이셔널’에서 3년 연속이자 통산 5번째 우승을 거머쥔 타이거의 발걸음은 2007년에도 거침이 없었다. Masters Tournament와 U.S. Open에서는 준우승에 그치며 메이저 사냥은 뜻대로 안 풀리는 모양새였지만, 2개의 WGC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큰 대회에서의 장점은 유감없이 펼쳐 보였다. The Open Championship에서 TOP 10 진입은 실패했으나 시즌 마지막 메이저 PGA Championship에서 통산 13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넣으며 4년 연속 메이저 우승, 해당 대회 2년 연속 우승의 기쁨을 맛본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dn-s3.si.com/Tiger-Woods-2007-PGA-Championship.jpg|width=100%]]}}} || || {{{#ffffff '''여유 있게 우승을 거둔 2007 PGA Championship'''}}} || 특히 이 대회는 타이거의 메이저 최저타인 63타(파 70의 대회로, 7언더파)를 기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둘째 날 63타를 기록하며 선두로 뛰어 오른 타이거는 3~4라운드에서 각각 1타씩 줄이며 총 8언더의 기록으로 편안하게 경기를 마쳤다. 이변도 없었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따분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었지만 타이거로선 당연히 해야 할 ‘메이저 우승’을 했을 뿐인 대회였다.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서도 ‘BMW Championship’에서 우승을 차지한 타이거는 결국, 시즌 최종전인 ‘Tour Championship’에서 2위를 8타차로 따돌리는 압도적인 경기력 끝에 페덱스컵 최종 우승자가 되었다. 그리고 최초로 해당 대회 2번 우승한 선수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활약 끝에 타이거는 상금왕과 평균 타수 1위, PGA 올해의 선수상을 ‘언제나처럼’ 획득해 간다. 동시에 아내 엘린과의 사이에서 첫 아이가 태어난다. 딸 알렉시스 우즈였다. 또 하나의 가족이 추가된 타이거는, ‘언제나처럼’ ‘당연히 해야 하듯’ 매 시즌 1월에 열리는 ‘뷰익 인비테이셔널’에서 4년 연속이자 통산 6번째 우승을 거머쥐며 2008 시즌을 스타트 한다. 하지만 참가 대회를 선별하며 스스로를 관리해 왔던 타이거에게 이 시점부터 무릎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강한 스윙을 위해 왼쪽 무릎에 압박을 많이 주었던 타이거의 몸이 부상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 2월의 유러피언 투어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통산 2승째를 거둔 뒤 WGC 악센츄어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스튜어트 싱크(미국)을 꺾고 통산 3번째 우승을 거두지만 타이거의 무릎이 심상치 않다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베이힐 인비테이셔널’에서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로 이름을 새롭게 바꾼 대회에서도 통산 5승째를 손에 넣은 타이거는, 성치 않은 몸 상태에서도 Masters Tournament 에서도 2타차로 준우승을 거두는 등의 활약을 보여 준다. 결국 타이거는 Masters Tournament가 끝난 뒤 왼쪽 무릎에 관절 경 수술을 받았다. 짧은 재활 기간 동안, 타이거는 왼쪽 경골의 이중 스트레스 골절을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복귀를 선언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치룰 만하다고 판단한 타이거는 필드로 돌아 왔으나 본인 생각보다 몸 상태는 더 좋지 않았다. 무릎은 물론 허벅지 근육에 문제가 생기는 등 컨디션이 최악에 달한 6월, 캘리포니아 토리 파인즈에서 열린 제 108회 U.S. Open에서 타이거는 불굴의 정신력으로 골프의 역사를 쓴다. 총 71타로 구성된 본 대회 1라운드 18홀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한 타이거는, 순간 자리에 서서 고통스러운 얼굴을 짓더니 절뚝거리며 이동하기 시작한다. 결국 1오버파로 첫 날을 마친 타이거는 대회 내내 다리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a.espncdn.com/pg2_2008tiger_576.jpg|width=100%]]}}} || || {{{#ffffff '''고통스런 표정으로 무릎을 집는 타이거'''}}} || 몸이 불편한 가운데에서도 메이저 우승을 향한 타이거의 집념은 보통이 아니었다. 둘째 날 3언더 – 셋째 날 1언더를 추가하는 등 몸 상태에 비해 순항한 타이거는 도합 3언더파로 파이널 라운드를 맞이한다. 특히 3라운드에서 보여 준 클러치 퍼트와 칩 샷은 타이거가 왜 동시대 최고의 선수인지, 왜 메이저 우승을 독점하 듯 싹쓸이 해왔는지 알 수 있는 퍼포먼스를 연속으로 펼쳐 보인다. * 파5 13번홀에서 티샷 미스 - 러프에서 세컨샷이 길어 그린에는 올라 왔지만 홀과는 20여미터는 족히 느껴질만한 거리에서 이글펏 성공. * 파4 17번홀에서 티샷 미스 - 러프에서 세컨샷이 짧아 그린과 벙커 사이 러프에 볼이 빠짐. 칩샷으로 홀인 시키며 버디 성공.[* 샷을 성공한 뒤 어처구니 없는 표정 후 함박 웃는 타이거의 미소는 매우 귀엽다. 하지만 스티브에 이끌려 그린에 올라 와서 절뚝 대는 걸 보면 확실히 무릎 상태는 최악이었음에 분명하다.] * 파5 18번홀에서 90도로 꺾인 10미터짜리 이글펏 성공. 무릎 부상의 여파로 샷이 안정감이 떨어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할 땐 스코어를 지켜 내었다. 좌충우돌(!) 끝에 3라운드 70타, 총 3언더로 1위를 지키며 파이널 라운드를 맞이한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yrI1HN2v_F8, width=560, height=320)]}}} || || {{{#ffffff '''2008 U.S. Open 3라운드에서 보여 준 기적 같은 경기력'''}}} || 마지막 날은 덥고 습했으며 무엇보다 러프 상태가 매우 거칠었다. 특히 뙤약볕이 내리 쬐는 시점에 플레이를 해야 하는 상위권 선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타이거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뜩이나 몸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겨우 겨우 버텨 내었지만 어려운 코스에서 이븐파를 유지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17번홀을 끝낸 타이거의 스코어는 이븐. 3오버파를 친 상태였다. 마지막 날 이븐파를 기록하며 18홀을 끝마친 선두 로코 미디에이트(미국)[* 1962 ~ 현재. PGA 투어 통산 6승을 기록 중인 베테랑 골퍼.]와는 한타 차.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맞이한 파5 18홀. 전날 이글을 기록했던 곳이지만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성가신 러프가, 양 사이드에는 길게 뻗어 있는 벙커와 함께 그린 좌측 방향에는 해저드가 기다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홀이기에 파5라고 해도 간단히 버디를 잡을 수 있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게다가 훗날 캐디인 스티브가 술회 했듯 “타이거가 이동할 때마다 무릎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솔직히 구역질 나는 줄 알았지만, 너무도 의연하게 버티며 플레이하는 타이거의 모습에 티도 못 냈다. 매우 영웅적인 모습이었다.”라고 할 정도로 무릎의 상태는 최악이었으며, 그에 따른 왼쪽 허벅지 근육에도 일부 손상이 일어난 상황이라 멀쩡히 경기를 치루는 타이거의 모습은 기적 그 자체였다. 외다리로 플레이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타이거의 18번홀 티샷은 결국 벙커에 빠진다. 벙커에서 안전하게 아이언으로 세컨샷을 하며 그린에서 가까운 페어웨이에 볼을 옮기려 했으나 약간의 샷 미스와 함께 홀로부터 105야드 떨어진 러프로 볼이 간다. 서드샷에서 핀에 붙이지 못하면 큰 위기에 빠질 뻔한 타이거이지만 침착한 샷으로 핀 4.5미터 가까이에 붙인다. 문제는 옆 라이(Lie)라는 것. ‘라이’는 홀까지 볼이 굴러가는 가상의 선을 말하는데 그린의 위, 아래 라이는 비교적 보기 편하지만 옆 라이의 경우는 위와 아래의 경사 모두를 봐야 하기 때문에 라이 체크가 더 어렵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파이널 라운드 파트너였던 리 웨스트우드[* 1973 ~ 현재. 영국 출신의 프로골퍼. 주로 유러피언 투어에서만 뛰었으며 PGA에서는 통산 2승. 프로 커리어 전체로는 현재 42승을 기록 중인 베테랑이다. 안정된 경기력을 바탕으로 2010년에 스캔들로 자리를 비운 타이거를 대신하여 세계 1위에 오른 바 있다. 메이저 4개 대회에서도 모두 공동 3위 이상은 기록했으나 현재까지 우승은 경험하지 못한 비운의 골퍼이기도 하다.]도 타이거와 같은 이븐파로 여기서 한 타를 줄이면 연장전에 갈 수 있는 상태였다. 리 웨스트우드도 좋은 서드샷으로 4.5미터 가량의 내리막 라이를 남겨 둔 채 타이거와 함께 그린에 오른다. 매스컴은 이미 선수 대기실에서 화면을 지켜 보는 로코에게 집중 되었다. 리 웨스트우드는 퍼트를 실패하며 연장전 진출에의 꿈을 접는다. 마지막 남은 타이거. 지켜 보는 로코. 세계 골프팬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타이거의 샷이 성공할 경우, 월요일에 펼쳐지는 18홀 Monday Play-Off가 열리기 때문이다. 수분간 면밀히 그린을 체크한 타이거는 퍼팅 준비를 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가볍게 스트로크 하여 굴린 볼은 홀의 우측을 살짝 핥으며 들어간다. 환호하는 타이거. 그리고 갤러리. “그럴 줄 알았다.”며 주변인들의 격려를 받는 로코[* 로코는 훗날 “당연한 이야기지만, 타이거가 넣을 줄 알았고 나는 안 들어가길 바랬다. 내 바램이 이루어지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이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드라마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eighteenunderpar.com/tiger-usopen2008-1.png|width=100%]]}}} || || {{{#ffffff '''퍼팅 성공 후 환호 하는 타이거와 갤러리'''}}}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iFfCpvT_MV8, width=560, height=320)]}}} || || {{{#ffffff '''파5 18번홀 중계 영상'''}}} || 그리고 월요일. 통상적이라면 일요일의 우승 뉴스와 해당 주 대회의 전망으로 바빠야 할 날이지만, U.S. Open의 전통대로 18홀 플레이오프가 열린다. 3만여명의 갤러리로 가득 찬 플레이오프에서 타이거와 로코는 환상적인 월요일을 연출해 낸다. 강한 상대와 붙어 쉽게 따돌리곤 했던 타이거는, 2000년 PGA Championship 때처럼 의외로 하위 랭커를 상대로 고전할 때가 있는데 이 날이 그랬다. 다리 부상의 여파이기도 했다. 10번 홀까지 타이거는 이븐파, 로코는 3오버로 타이거의 완승이 기대 되었으나 11번 홀부터 다리 부상 때문인지 타이거의 샷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동시에 로코의 경기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로코가 13 ~ 15번 홀에서 연속 버디로 이븐파까지 줄일 때 타이거는 2오버파까지 떨어졌던 스코어를 겨우 1오버파로 돌려 놓았을 뿐이었다.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가 싶었지만 여기서 타이거의 저력이 나온다. 파5 18번홀에서 티샷이 운 좋게 벙커 턱을 맞고 페어웨이에 올라왔고 아이언 세컨샷을 그린에 올리며 이글 퍼트의 기회를 맞이한다. 이글 퍼트는 실패했지만 버디로 마무리를 지었고 로코가 ‘우승 확정’ 버디 퍼트를 실패하면서 결국 18홀 플레이오프도 무승부가 되었다. 그리고 서든데쓰 플레이오프[* 둘 중 한명이 이기는 홀이 나오면 경기가 끝나는 형식. 일반 대회에서 플레이오프 경기는 이렇게 치루는 경우가 많다.]를 치뤄 첫 홀에서 타이거가 파, 로코가 보기를 기록하며 기적 같은 타이거의 14번째 메이저 타이틀이 확정 되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satgolfweek.files.wordpress.com/tiger-woods-torrey-pines-us-open-2008-2.jpg|width=100%]]}}} || || {{{#ffffff '''시상식에서 환담을 나누는 타이거와 로코'''}}} || 한 쪽 다리로만 플레이하며 우승한 타이거의 승부욕과 집념은 화제가 되었다. 몸의 부상을 극복하고 동시대 가장 위대한 골퍼라는 자존심을 지킨 타이거는 “내가 겪었던 모든 대회 중 가장 힘들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우승을 차지해서 너무 감격적이다. 더 이상의 플레이는 도저히 불가능했다.”라고 인터뷰 하였다. 그러나 몸의 부담을 극한까지 밀어 부친 대가는 컸다. 감동적인 우승 뒤 얼마 후, 타이거는 공식적인 성명을 통해 무릎 부상 치료 등을 이유로 투어 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힌다. 남은 시즌의 포기를 밝힌 타이거는 메이저대회를 포함 모든 대회의 참가 취소하고 재활에 몰두한다. 재활 및 투어 중단 선언 후 8개월 동안 필드를 떠난 타이거였지만 이 시기에도 축복 어린 소식이 생긴다. 바로 둘째 아이이자 아들인 찰리 엑슬 우즈가 2009년 2월에 탄생한 것. 복귀 직전에 태어난 아들로 인해 타이거는 더 절치부심한 모습으로 재활을 마무리 지었으며 그해 2월 말 투어 복귀를 선언한다. 복귀 후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회 중 하나인 ‘[[아놀드#s-2|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한 타이거는, 1~3라운드에서 계속 언더파를 내며 변함없는 경기력을 과시했다. 파이널 라운드에서 션 오헤어(미국)와 함께 한 타이거가 17번 홀까지 마쳤을 때 4언더파로 션과 동률이었다. 세컨샷을 나란히 그린에 올린 두 선수 중 션이 먼저 퍼팅을 했고 볼은 홀에 미치지 못했다. 신중하게 라이를 살핀 타이거는 대선배 아놀드가 지켜 보는 가운데 6m 가량의 퍼팅을 성공시키며 버디를 획득, 2009 시즌 첫 승을 거두어 낸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dn-s3.si.com/Tiger-Woods-2009-Arnold-Palmer-Invitational.jpg|width=100%]]}}} || || {{{#ffffff '''우승 후 환호하는 타이거와 스티브'''}}} || 이 후 또 다른 대선배 [[잭 니클라우스]]가 호스트인 ‘메모리얼 토너먼트’ 우승을 거둔 뒤 WGC 대회인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에서도 우승한 타이거는 도합 시즌 6승을 획득, 무릎 수술로부터 정상적으로 회복했음을 경기력을 통해 입증하였다. 투어 챔피언십에서도 1승을 거두었고, 비록 최종전인 ‘Tour Championship’에서 우승은 [[필 미켈슨]]에게 빼앗겼으나 종합 페덱스컵 포인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1천만달러의 보너스까지 획득하는 등 화려한 컴백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상금왕 – 다승왕 – 올해의 선수 – 평균 타수 1위 등을 싹쓸이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메이저 타이틀로 이야기를 옮기면 다소 서운한 시즌이었다. Masters Tournament와 U.S. Open에서는 각각 6위를 차지하며 선전했으나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열린 The Open Championship에서는 1~2라운드 5오버파라는 성적으로 프로 생활 두번째 메이저 컷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첫번째 컷 탈락은 아버지와 관련한 심리 상태가 작용했다 볼 수 있지만 이번 탈락은 실력으로 컷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기에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PGA Championship은 타이거에게 중요한 대회였다. 복귀 후 첫 메이저 타이틀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고, 실질적으로 해당 대회 3회 연속 우승을 기대할 수 있었으며( 2006 ~ 2007년 연속 우승에, 2008년은 부상으로 인해 출전 포기), 무엇보다 The Open Championship에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에 시즌 마지막 메이저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1라운드에서 5언더파를 기록하며 선두로 치고 나간 타이거는, 3라운드까지 총 8언더를 기록하며 와이어 투 와이어[* 1~4라운드 중 모든 라운드를 1위로 마치며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뜻함]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파이널 라운드의 파트너는 한국의 [[양용은]][* 1972 ~ 현재. [[최경주]]에 이어 PGA 투어에 진출한 두번째 한국인 선수. PGA 통산 2승을 가지고 있는데 최경주 조차 품어 보지 못한, 아시아 최초 그리고 2017년 현재까지 유일한 메이저 타이틀 보유자이다.]. 첫 날 73타를 쳤으나 가파른 상승세로 파이널 라운드 챔피언조까지 오른 선수이고 2006년도 HSBC Champions에서 타이거를 2타차로 제치고 투어 첫 우승을 기록했기 때문에 다소 껄끄러운 상대이기도 했다. 다만, 8언더인 타이거가 6언더인 [[양용은]] 보다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통산 15회째 메이저 우승에는 상대적으로 가까웠다. 그러나 막상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하자 상황은 다르게 흘러갔다. 강한 상대와 붙어 쉽게 따돌리곤 했던 타이거는, 2000년 PGA Championship 과 전년도 U.S. Open 때처럼 의외로 하위 랭커를 상대로 고전할 때가 있는데 이 날 또한 그랬다. 양용은이 어제의 타수를 유지하며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준 사이, 타이거는 2타를 까먹으며 결국 13번홀에서 동타를 이룬 것. 운명은 파4 14번 홀에서 갈렸다. 짧은 파4였기에 둘 다 드라이버로 원 온을 노리는 티샷을 했는데 타이거의 샷은 벙커로, [[양용은]]의 샷은 벙커 옆 러프로 빠졌다. 타이거는 버디가 가능한 거리까지 벙커샷을 잘 쳐 놓았고 양용은의 결과를 기다렸는데, 양용은의 칩샷이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가며 이글이 나오고 만다. 여기서부터 분위기는 양용은에게 갔고 다급해진 타이거의 샷과 퍼트는 목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 유지했을 시 단 한번도 역전 우승을 허용치 않았던 타이거의 ‘불패 신화’가 깨지기 직전.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resources0.news.com.au/271592-ye-yang-and-tiger-woods.jpg|width=100%]]}}} || || '''{{{#bfc1c2 어쩌면 타이거 우즈 시련의 시작인 PGA Championship에서의 패배}}}''' || 서로 한타씩을 잃고 맞이한 마지막 18번홀에서 양용은은 세컨샷을 버디 가능한 위치에, 타이거는 세컨샷이 그린을 살짝 벗어나며 러프로 향했다. 러프에서 친 타이거의 샷이 홀을 외면하며 실낱 같은 희망은 사라졌다. 그 상황에서 양용은의 버디 퍼트는 들어갔고, 파 퍼트를 남긴 타이거의 앞에서 양용은은 기쁨의 우승 세리 머니를 보여준다. 쓴 웃음을 지은 채 패배를 인정한 타이거는 파 퍼트 마저 실패하며 보기로 마지막 홀을 마쳤고, 그렇게 충격적인 패배는 최악의 모습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 패배에도 불구하고 PGA와 유러피언 투어 대회에서 각 1승씩을 거두며 패배의 아픔에서 금방 헤어 나왔음을 보여준 타이거에게 다음 시즌은 매우 중요했다. 2008년 The U.S. Open 이후 메이저 타이틀을 다시 획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해 11월 말, 타이거는 물론 그의 가족과 그의 플레이를 사랑하고 동경했던 수많은 골프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대형 스캔들이 터진다. 골프를 포함한 타이거의 인생 자체가 큰 전환점을 맞이 하게 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